조정진, 『임계장 이야기』_일이 끝나면 시작되는 일들
책 정보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후마니타스, 2020
은퇴 이후에 시작되는 노인 노동
사회적 보호와 관심의 바깥에서 위험에 노출
임시 계약직 노인장. ‘임 씨 성의 계장(係長)’ 정도로 짐작했던 ‘임계장’의 뜻이다. <임계장 이야기>는 퇴직 이후에도 부양과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분투기를 다룬다.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저자가 겪은 실화다,
저자인 ‘임계장’ 조정진 씨는 60세가 되던 2016년, 40년 가까이 일해 온 공기업에서 퇴직한다. 오늘 날 많은 청년들이 선망하는 공기업에서 정년을 마치고 은퇴한다는 적당한 자부심을 품고, 안정적인 노후를 그렸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퇴직 ‘이후의 삶’은 또 다른 노동의 시작이었다. ‘아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부모로서 학비를 마련해야 한다’. ‘퇴직금은 딸의 결혼식을 치르면서 미리 정산하고 없다’. ‘근무지를 옮기면서 주택을 사야 했고 그 과정에서 대출받은 돈의 상환일이 다가왔다.’ 이러한 요인들은 퇴직 이후 환갑이 넘은 저자를 ‘임계장’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노동은 개인의 생계, 즉 자기-부양만이 아니라 가족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첫 직장인 버스 회사 배차 계장을 시작으로 아파트 경비원 업무, 그리고 아파트 경비원과 병행한 빌딩 경비원 업무, 터미널 보안요원 업무까지 네 곳에서의 노동 일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 일터들은 하나같이 위험하고, 노동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처우조차 기대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이다. 그곳에서 그는 단지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쉬운’ 고·다·자로 대우받을 뿐이다. 정해진 휴식 시간, 업무 영역이 무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낮은 월급을 받는 직종이라는 이유로 다른 직원, 주민 등으로부터 무시와 갑질을 당하기도 한다. 노동법이 존재하므로 그것에 위반되는 사항은 거부하거나 고발할 수 있지만 임계장에겐 당장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월급을 버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러지 않는다. 가장으로서 짊어진 생계의 무게를 그저 견디며 위태롭게 버틸 뿐이다.
임계장은 끝내 쓰러지고 나서야,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나서야 두 곳의 경비원 업무를 병행하던 비상식적인 일상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는 노동을 완전히 멈추지 못한다. 노동을 지속하면서 자신이 겪어 온 일터의 이면을 담담하게 기록하여 전한다. 어쩌면 그러한 기록이 일의 슬픔과 부조리를 고발하여 누군가의 일-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기대였을까. 누군가에게 노동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읽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소설처럼 읽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는 점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주변의 ‘임계장’들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면, 이 책의 쓰임은 충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