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는 책 읽기

『비숲』_긴팔원숭이를 좋아하시나요?

지금+여기 2018. 4. 29. 02:17

긴팔원숭이를 좋아하시나요?
-김산하, 『비숲』, 사이언스
북스, 2015

열대우림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온통 푸른 나무에 온갖 생명체가 번성한 곳. 때문에 약동하는 생명의 이미지, 푸르름이 쉽게 연상되곤 한다. 하지만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 그 속은 어둡다고 한다. 무성히 자란 나무가 햇빛을 가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속에선 느낄 수 없지만 태양은 아낌없이 온기를 내주어 밀림을 키웠고 덕분에 많은 생명이 숲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간다. 비숲, 그는 그곳을 비숲이라 불렀다. 비가 많이 내려 비숲이라고 한다.(물론 비숲은 한자어 우림雨林을 순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긴팔원숭이가 살던 그곳에, 어느 날 한국인 영장류학자가 찾아온다. 『비숲』은 영장류학자 김산하 박사가 인도네시아의 구눙할리문쌀락 국립 공원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며 겪은 일들을 엮었다.

'긴팔원숭이가 대체 뭐라고'. 처음엔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려고 인도네시아 어느 까마득한 숲으로 향한 영장류학자의 이야기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지구엔 수많은 종이 살고 있고 긴팔원숭이도 그저 하나의 종에 불과하지 않나. 단지 동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떤 위험과 불편이 기다릴지 모를 열대우림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모두가 결국 엇비슷한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나아가는 세상에서, 그의 행보는 어딘가 한가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심지어 학문의 세계에서도, 요즘은 돈 되는 분야에 모든 것이 몰린다고 하지 않던가. 그의 선택을 보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 고민하던 주변의 순수학문 전공자들이 떠올랐다.)

왜 하필 긴팔원숭이였을까. 굳이 인도네시아 까마득한 숲까지 가야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뜻밖에 그의 답은 단순했다. '긴팔원숭이는 인간과 같은 유인원이고, 긴팔원숭이를 아는 것은 인간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긴팔원숭이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공교롭게도 긴팔원숭이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만 살고 있다.' 사고의 흐름이 이런 식으로 이어질 무렵 그는 인도네시아행 티켓을 끉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비행기 표를 구입하기는 커녕, 당장 내일 무얼할지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의 용기와 무모함에 감탄할 따름이다.

물론 그의 긴팔원숭이 연구가 수월하지 않았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밀림이라는 단어는 낭만적이지만 실존하는 온갖 위험 요소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의사소통할 수 없는 동물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은 더욱 배가 된다. 부족한 전기와 열악한 환경에 연구 의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동료들의 도움과 낙천적인 태도, 그리고 약간의 운이 더해지면서 무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긴팔원숭이 연구를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무엇보다 연구 자체를 즐기고, 긴팔원숭이 자체에 애정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에겐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 있었고, 그저 그 마음을 따랐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은 그의 연구에 어떤 변수로도 작용할 수 없었다. 

그의 연구기(記)는 모험에 가까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이 책의 부제는 '긴팔 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이다.)  하지만 단순한 흥미로움을 넘어 부러움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나의 긴팔원숭이는 무엇일까.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다. 잊고 살아온 것인지, 애초에 없었는지. 잊었다면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요즘 강하게 하는 생각 하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용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다시 찾는다면 그땐 나의 긴팔원숭이를 향해 까마득한 숲 속으로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을까. (어째 요즘 하는 생각의 끝은 모두 나의 욕망으로 귀결된다.)